보스톤 마라톤 참가기4 - 홉킨톤 집결지 기본 카테고리

도착지인 홉킨턴의 운동선수 마을 (athletes’ village)은 말 그대로 난민 수용소 같았습니다. 이전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후기에는 축제 분위기에서 다양한 볼거리와 몸 풀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다고 했는데 오늘은 아닙니다. 전날에는 눈이 왔었던 것인지 한쪽에는 치워놓은 눈이 쌓여 있었구요,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설치한 천막 두동 안에는 벌써부터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일부 바닥은 진흙탕이어서 앉아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추위에 몸이 많이 떨려서 천막 구석에서 제공하는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여야 했습니다. 커피를 제공하는 부스와 베이글, 바나나 등 음식을 제공하는 부스가 천막 안 반대편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커피 들고 음식 제공하는 곳으로 줄 서서 이동했다가 음식 받고는 다시 줄 서서 커피 주는 곳으로 이동하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큰 컵으로 커피를 다섯 잔 정도 마시게 되었는데 여기부터 뭔가 조짐이 좋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역시 실제는 보이는 것보다 더 개판이었습니다.

운동선수 마을에서 출발지로 이동은 자신이 속한 웨이브라고 부르는 출발 조에 따라 달라집니다. 각 웨이브는 다시 코랄이라고 하는 몇 개의 소집단으로 나뉘는데 1번 웨이브는 8시에 출발이어서 7 30분에 운동선수 마을에서 출발지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렇게 출발지에 도착하면 자신이 속한 코랄에 모여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면 됩니다.

커피를 많이 마신 탓인지 화장실이 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동식 화장실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었는데 천막 안에서 비교적 좋은 자리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있다가 막판에 화장실에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줄서고 보니 화장실 줄이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지는 않았구요, 제가 속한 조가 출발지로 이동하라는 안내가 계속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날씨는 춥고 긴장도 해서 화장실은 더욱 급해지고, 거의 최후의 순간을 임박해서 볼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천막 안은 서 있는 사람으로 가득하고 바닥은 진흙탕이라 양말이나 신발을 갈아신을 수가 없었구요, 결국은 비가 조금 잦아드는 시점에서 대회용 신발과 마른 양말을 갈아신어야 했는데 막상 신발과 양말을 벗는 순간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겁니다. 그 즉시 양말, 신발 다 젖어버렸고 뭐하러 이 운동화를 소중하게 가지고 있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약간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에서 입었던 바람막이와 트레이닝 복 바지를 벗고 우비만 위에 걸친 채로 출발지로 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집사람이 꼭 챙기라고 몇 번 다짐을 했던 혹시 출발지나 도착해서 필요할 지 몰라 준비했던 트레이닝 복 바지 주머니 속의 30달러를 까맣게 잊고 말았답니다. 이것은 도착해서 겪게 되는 또 하나의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게 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