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 마라톤 참가기5 - 혹독한 달리기의 경험 기본 카테고리

어쨌거나 출발지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습니다. 출발선에 있는 사람들 모두 서로를 격려해주고 비바람 속에 응원하러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괴성을 질러주기도 하고 음악을 틀어놓기도 하였습니다. 약간의 들뜨고 흥분된 분위기에서 출발 신호와 함께 출발을 했습니다.

출발지부터 도착지점까지의 마라톤 코스는 동마나 춘마처럼 넓은 거리를 뛰는 것은 아니더군요. 말하자면 미국의 포장된 넓지 않은 시골길을 페이스가 비슷한3만명의 러너들이 시간에 따라 출발을 달리하며 뛰게 되다보니 꽤 오랜 시간 다양한 색상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길을 꽉 채우고 가게 됩니다. 뒤에서 보는 그 장면은 무척이나 장관이었습니다.


보스턴 마라톤 코스맵

평소 몇 번씩 확인을 하는데 출발지에서 어찌나 정신이 없었던지 신발 끈이 풀려있었던 것을 달리고 한 5분 지나서 알게 되어 다시 매고 뛰는 등 시작이 다소 부산스러웠습니다. 신발이 젖어서인지 평소와 다르게 약간 신이 작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여기에 신경을 쓰다보니 왼발이 무거우면서 약간의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뛰면서 점점 아파져서 이렇게 계속되면 여기까지 와서 레이스를 마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달리고 나니 대뇌에서 생성된 엔돌핀 때문인지 통증은 많이 가셨고 그로부터는 달리기와 주변 환경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앞서 말했듯 홉킨턴이라고 하는 외곽에서부터 보스턴 중심부까지 포장된 시골길을 달리면서 중간중간에 애쉴랜드, 프래밍햄 같은 마을을 거치게 되는데 시골 마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축제 분위기에서 환호와 응원을 아끼지 않아 젖은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습니다. 어떤 마을에서는 대용량 스피커로 흥겨운 음악을 틀어주기도 하였고 스윗 캐롤라인 같은 잘 알려진 팝송이 나오는 부분에서 달리던 러너들이 한 목소리로 함께 따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이때만 해도 힘이 있어 보이네요

피켓들도 많이 들고 나와 자기가 응원하는 주자 이름을 써 놓았거나, “Welcome to Boston, Mother Nature hates us! (보스턴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대자연은 우리를 미워해요)” 같은 재미있는 구호를 적어놓은 것도 보았습니다.

일본국기나 중국국기를 들고 응원을 하는 아시아계 사람들도 수월치 않게 만날 수 있었는데 한국사람들은 많이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쉽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중간중간에 제 옷에 그려진 태극기를 보고 싸우스 코리아를 외쳐주던 몇 분이 있어 손도 흔들어주고 파이팅도 해 가면서 많이 힘들지 않게 초반 레이스를 할 수 있었습니다.

1마일마다 물과 게토레이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사실 물은 하늘에서 워낙 많이 뿌려주고 있어서 그리 아쉽지는 않았구요, 게토레이는 우리가 마시던 것과 맛이나 향이 조금 달라서 이거 상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중간 지점 부터 파워젤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 파워젤은 우리가 먹던 것과 조금 느낌이 달랐구요, 맛은 둘째 치고 액상으로 그냥 삼킬 수 있지 않고 조금더 고형성분이어서 씹어서 삼켜야 했습니다.


선생님, 비가 와요

와중에 역시 25킬로미터가 넘어가면서 고비가 오더군요. 견딜만 했던 왼쪽 발이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구요, 워낙 추운 날씨 탓에 허벅지와 장딴지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날씨에 쥐까지 나면 끝이다라는 생각에 페이스를 줄였는데 아직까지 달리면서 쥐가 난 적은 없었어서 한번 신경을 쓰게 되니 달리는데 부담이 많이 되었습니다.


비는 점점 세차게 내리고...

게다가 그러면서 만난 코스는 하트브레이크 힐이라고 하는 보스턴 코스에서 유명한 오르막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하늘에서 내리는 비바람은 거의 폭풍우급으로 거세지고 있었구요.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걷기도 하고 가혹한 날씨때문에라도 포기자가 속출하기도 하였습니다만, 그래도 이보다 훨씬 가파르고 긴 문의의 오르막 훈련으로 다져진 다리 덕에 마지막 깔딱고개를 생각하면서 페이스를 많이 늦추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다른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35킬로미터 지점 이후로는 거의 정신을 놓고 달려가는 상황이었구요, 어느샌가 보스턴 시내처럼 보이는 광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골인~

많은 주자들과 함께 골인지점을 통과하고 처음 느낀 감정은 해냈다는 만족감보다 춥다라는 것이었습니다.달릴 때는 몰랐는데 달리기를 멈추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흠뻑 젖은 몸이 영상 1도의 날씨에 바로 노출되면서 이가 부딪히고 전신이 떨리고 이러다가 저체온증으로 죽겠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습니다. 도착지점에서 골인하고 나서도 외부와 차단되어 정해진 코스로 이동하게 되는데 맨 먼저는 별로 아쉽지 않은 물을 지급받았고, 다음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목에 메달을 걸어주며 콩그래츌레이션을 연발했는데 추워서 축하받을 겨를도 없었습니다. 바나나, 빵 등이 들어있는 음식 봉투를 주고 나서 보스턴 마라톤 로고가 새겨진 은박의 판쵸우의를 입혀 주었는데 어느 정도 추위를 막을 수 있게 되다보니 이제야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한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그래도 턱과 온몸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구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의 완주자 모두 얼굴이 하얘지고 백인이나 흑인이나 우리나 모두 몸을 달달 떨고 있더군요.

짐을 찾으라 줄을 서는 내내 추위에 떨었구요, 따뜻하게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을 찾으니 거기도 길게 줄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어쨌든 옷을 갈아입고 제공해준 판쵸우의를 걸치고 나니 안도가 되고 이제 집에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주먹은 쥐고 입은 꾹 다물고 있지만 엄청 떨고 있는 상황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