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 마라톤 참가기3 - 대회장 가는 길 기본 카테고리

전날 시차때문인지 별로 못 자고 세시간 반을 달려 오느라 피곤해서였는지 숙소에 돌아와 잠은 비교적 푹 잤습니다. 덕분에 시청에서 제공하는 공짜 경기전 파티를 놓쳤지만 그리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새벽에 깨어 창밖을 보니 숙소 앞에 쳐져 있는 천막의 지붕이 흔들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비도 만만치 않게 오고. 제가 달려본 대회 날씨중에는 최악일 것 같았습니다.


아침방송 장면. 비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어찌 되었던 부딪혀보는 수 밖에요. 역시 불안했던지 집사람도 일찍 깨었고, 한국에서 가져왔던 누룽지와 햇반, 우거지 들깨탕으로 든든히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역시 탄수화물 로딩하는 것은 한식만한 것이 없다고 느낍니다. 전날 호텔 식당에서 마라톤 참가자를 위해 없던 특별 메뉴로 파스타를 제공했는데 별로 든든하지 않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미국이라 어쩔 수 없이 전날 먹었던 파스타. 그래도 호텔에서는 나름 마라토너를 위한 특별식이라고 홍보함.

대회 조직위에서 무척 강조한 것이 보안의 문제입니다. 전기밥통 폭탄으로 인한 테러가 있었던 것이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안내사항에 보면 출발지점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조직위에서 제공한 작은 비닐 봉투에 담긴 물병이나 바나나 혹은 작은 수건 같은 것들이고 그나마 도착지점으로 되가져 올 수 없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 외의 물품들은 자기 배번 스티커를 부착한 봉투에 담아 출발지에 맡기고 갈 수 있었습니다. 가져갈 물품과 맡길 짐을 구분해서 봉투에 담고 제가 소속된 그룹 (wave 1) 6시에 버스를 타야 한다고 해서 거기에 맞추어 숙소에서 나왔습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셔틀을 타고 집결지인 보스턴 커먼으로 향했습니다.


출발전. 호텔 로비에서 출전자를 위해 무료 생수와 바나나를 제공하고 있음.

미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노란색 스쿨 버스가 그렇게 많이 모여 있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보안 검색이 까다롭지는 않았구요, 공지와 달리 별도의 비닐 봉투에 물품을 담아 가거나 웹캠이나 전자제품도 모두 반입이 되고 있었습니다. 배번 있어야 버스 탈 수 있다고 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구요, 인터넷 정보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실제 경험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날씨는 계속 궂었습니다. 처음 계획은 신고 있는 신발은 짐으로 맡기고 달리기 위한 운동화를 신고 버스에 탈 생각이었는데, 신고 있던 운동화가 너무 젖은 지라 이걸 계속 신고 출발 직전에 갈아 신는 것이 낫겠다 싶더군요. 그리 되면 신고 있는 운동화는 출발지에 두고 와야 하고 결국 기부하게 되는 꼴이지만 버려도 그리 아깝지는 않은 신발이기는 했습니다.

사실 너무 춥고 비가 오는 날씨라 옷을 든든히 입었어야 했는데 달리기 복장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도 되었습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몸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지금은 커서 못 입는 바람막이가 유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스턴에서 뛰려고 특별히 주문한 태극기가 그려진 마라톤 민소매만 입으려고 했는데 안에 반팔티를 받쳐 입고 뛰기로 하였습니다.

결국 반팔티를 받쳐 입은 마라톤 민소매 위에 바람막이와 반바지, 그리고 오래된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우비를 걸친 채 투명 비닐 봉투에 뛸 때 신으려고 준비한 아디다스 아디제로 보스턴 6 운동화를 담아서 출발지인 홉킨턴으로 향하는 노란색 스쿨 버스를 탔습니다.


실제로 이 버스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어요.

세찬 비바람만큼 출발지로 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던 것 같습니다. 동료와 함께 탄 사람들은 서로 즐겁게 대화하기도 했지만 다들 성가신 우비를 걸쳐 입고 움직임이 거추장스럽기도 해서인지 조용히 바깥 날씨를 관망하면서 가는 분위기였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