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0줄에 접어들어 기억 및 인지장애의 질환인 치매를 공부하러 바다건너 세인트루이스까지 온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더욱 깊이 느끼는 것은 사람의 기억은 정말로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하는 점입니다. 그래도 지금껏 예전의 일을 기억하는 것에 나름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순간순간 어이없는 단기기억과 중장기기억의 회상 실패를 더욱 자주 겪으면서 인간의 정신이 물질인 뇌수의 소산임을, 그리고 그 뇌수는 노화와 각종 신경독성 인자 (예를 들어 알코올이나 스트레스 같은)에 당해낼 재간이 없음을 새삼 느끼고 있지요.

 

정신의학 영역에서 알코올 중독을 공부하고 연구하다가 다 늦게 치매에 대한 공부를 새로 시작하는 저로서는 비교적 시의적절한 감상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러라 문득 결국 지금 소중하게 느끼는 이 한순간 한순간도 결국은 내 대뇌 어딘가에 신경세포의 연접과 특정 구조의 단백질로 잠깐 존재하다가 이들의 소실이나 퇴행과 함께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 

 

memory는 우리말로 흔히 기억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추억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기억이라는 인지적인 용어에 감정적인 요소가 결합하면 추억 혹은 나아가 향수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기억이 추억이 되기 위해서는 약간은 퇴색하고 아련한, 굳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소간의 내용 회상에 손상이 있는 기억이 아마도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이 아무리 감정적으로 의미있었던들 추억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색하니 말이지요. 또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굳이 돌아가려고 애쓰지는 않지만 그럴수도 없는 상황들에 대한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린시절 부모님과의 기억, 유치원부터 의과대학까지의 학창시절 기억이나 가깝게는 인턴, 전공의, 군의관까지 대략 10년 내지 30년전의 기억들은 아련하고 뚜렷하지 않지만 당시의 감정과 결부되어 추억과 향수로서 언뜻언뜻 가슴 따뜻한 무언가를 전해주곤 하지요.

 

하지만 아쉬운 것은 유치원때부터 국민학교 6학년때까지 단 한번을 제외하고 모두 사보았던 당시 최고의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 국민학교 때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나 카드, 고등학교 방송반 시절에 각색한 드라마 대본이나 지금의 집사람을 초빙하여 공연한 그 드라마의 녹음 테이프, 나름 정리광으로 불리우던 의과대학 시절의 드래곤볼 만화 캐릭터를 표지로 정리했던 병리학 노트를 제대로 보관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부랴부랴 국민학교 2학년부터 결혼할 때까지 살던 집을 정신없이 정리하면서 대부분 소실되기는 했지만 가끔씩 그런 추억의 단서들이 못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큰애가 이제 올해 미국에서 중학생이 되네요. 그러고 보니 그 아이도 이 세상에 나온지 10년이 넘어가네요. 막내 아이가 지금 큰 아이 나이가 될 때쯤이면 큰 아이는 이미 스무살 처녀가 되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첫걸음을 떼려고 하겠지요. 그 기간 동안 그리고 이전에 같이 하던 많은 기억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잡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아련하고 따뜻한 감정이라도 굳이 아날로그에 담을 필요는 없지요. 어깨동무나 그림 카드보다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이메일이 익숙한 아이들에게 사이버 공간이야 말로 훗날 그들의 향수요 아날로그일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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