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인지장해와 임상치매척도 기본 카테고리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알츠하이머병 연구센터에 방문연구원으로 근무할 적의 이야기이다.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데 아무리 자동차 열쇠를 찾아도 보이지가 않았다. 한 30분간 집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찾지 못해 집사람 차로 출근해야 했다. 마침 그날 그 센터 소장이며 치매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모리스 박사(John C. Morris, M.D)와 나이가 들어 생기는 건망증이 치매와 관련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모리스 선생님은 정상적으로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문제가 될 정도로 심하게 떨어진다면 치매를 의심해야 한다는 요지로 말씀하셨고 하필이면 예를 든다는 것이 아침에 자동차 열쇠 둔 곳이 생각이 나지 않아 여기저기 찾고 있다가 결국 찾는 것은 정상 노화에서 오는 건망증이고, 끝끝내 찾지 못한다면 그건 치매 증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치매 공부하러 왔다가 치매 얻어가게 되었다는 생각에 정말 그런지에 대해 질문을 했더니 이 선생님, ‘너 열쇠 잃어버리고 못 찾은 적 있지’ 하시는게 아닌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실토했더니 나를 심각하게 바라보시다가 ‘그때 그때 달라요 (case by case)’라며 급히 정리하셨는데 아직도 그분 속마음은 궁금하다.
우리는 기억력과 함께 언어기능, 주의집중력, 문제해결능력, 추론능력과 같은 다양한 뇌기능을 이용하여 생활한다. 이러한 기능 전반을 인지기능이라고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 인지기능은 변한다. 의학적으로도 이렇게 나이 들면 생기는 인지변화를 다양한 용어로 부르고 있다. 양성 노인성 건망증, 나이 연관 기억 장애, 나이 연관 인지 감퇴, 경도 인지 감퇴, 비치매성 인지 장해, 경도 인지 장해 등의 의학 용어들이 이러한 상황을 지적한다. 하지만 정상 노화과정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전체 인지영역의 총합에 큰 변화가 없다. 물론 단기 기억력이나 정보 처리속도는 감퇴하지만 예를 들어 어휘능력 등의 일부 인지영역은 80세까지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검사로 평가가 어려운 직관능력은 꾸준히 증가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경험이 많고 사물에 대한 통찰과 혜안을 가지고 계시는 어르신을 찾아 조언을 듣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경우, 이것이 정상 노화의 일부인지 아니면 치매와 같은 어떤 병적 상황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점이다. 자동차 열쇠를 결국 찾느냐 못찾느냐 정도의 기준만으로 구분하기에는 현실은 너무 복잡하다.
치매는 앞서 언급한 인지장애와 함께 이로 인하여 실제 생활 기능에 손상을 보이는 후천적인 증후군이다. 따라서 인지장애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로 인하여 일상생활, 예를 들어 집안일, 취미생활, 사회활동, 개인 관리 등에 문제가 없다면 치매라 하지 않고 ‘경도인지장해’라는 다른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 경도인지장해는 여러가지 다양한 이유로 인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치매의 전조 증상일 수 있다. 치매의 가장 많은 원인인 알츠하이머병은 서서히 점차적으로 발병한다. 따라서 이 병의 초기에는 단순한 기억 감퇴만 느끼고 일상 기능은 잘 유지가 되는 경도인지장해에 해당하는 시기가 존재한다. 모리스 박사는 알츠하이머병을 전혀 증상이 없는 전임상단계와 증상이 나타나는 임상단계로 나누고, 임상단계를 다시 전구기와 명확한 치매시기로 구분하였는데 알츠하이머병의 전구기는 명확한 치매 증상 없이 경도인지장해의 정의에 부합하는 시기이다. 이와 같이 경도인지장해는 알츠하이머병이나 뇌혈관질환에 의한 치매, 전측두엽치매 등의 노인성 치매의 어떤 단계에서 관찰된다. 동시에 우울감이나 불안 증상, 특히 치매에 걸렸을까봐 과도하게 걱정하는 건강염려증 노인에서도 이 경도인지장해의 특징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갑상샘 질환이나 영양결핍, 신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하는 약물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치매의 어떤 단계에서 발생하는 경도인지장해와 비교할 때 후자들의 경우 효과적인 치료로 회복이 가능하다. 따라서 경도인지장해는 회복 가능한 경우와 회복이 불가능하지만 관리해야 하는 경우 (치매의 전구 증상)를 구분해서 대응해야 한다.
이것을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치매에 대한 국가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보건소나 관련 기관에서 치매에 대한 검사를 손쉽게 제공하고 있다. 보건소에서 검사했는데 치매라고 했다고 약 처방해 달라고 오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 치매 확인을 위해 일선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검사법은 영문으로 MMSE라고 알려진, 우리나라에 다른 두 종류가 존재하는 ‘간이정신상태검사’이다. 고전적이고 유용한 검사이지만 경도인지장해 환자를 평가하기 썩 적당하지 않다. 경도인지장해를 보이는 환자 중 이 검사에 양성인 사람이 1년 후 치매로 진단될 확률은 63%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전 인지기능이 매우 좋은 노인에서는 치매의 병리가 아주 많이 진행하기 전까지 점수가 떨어지지 않아 초기에 확인이 어렵다. 반면에 임상의사의 세심한 병력 청취, 신체검사, 정신상태검사를 구조화한 평가 도구인 ‘임상치매척도 (CDR)’를 이용한 경우 위의 확률이 92%까지 증가하였다. 물론 십여분 소요되는 간이정신상태검사에 비해 임상치매척도 평가는 2시간 가량 소요되며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사태의 책임이 어디있건 ‘50분 대기, 5분 진료’라는 비아냥을 받는 우리 의료 상황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임상치매척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이 평가가 치매 치료 약물 처방의 보험기준이 됨에 따라 훈련되지 않은 의사가 5분 안에 검사하는 곳도 우리나라이다. 부끄럽지만 우리 상황을 임상치매척도를 개발한 모리스 박사에게 이야기하니 알고는 있지만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신다. 본고장에서는 보호자와 환자를 대상으로 각각 1시간 정도 면담해서 점수를 결정하고 전 과정을 촬영한 뒤 결과를 모르는 다른 평가자가 테이프만 보고 다시 점수를 매겨서 두 평가자의 각각의 점수가 일치해야 비로소 임상치매척도 점수가 결정된다. 1987년 미국국립보건원은 치매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관심이 있는 의사가 시행하는 세심한 병력 청취와 신체검사, 정신상태검사가 최선의 진단도구이며 비록 이 방법이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다른 어떤 방법도 이것을 대신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로부터 30년이 채 못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이며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뇌영상 검사를 쉽게 할 수 없는 우리 현실에서 특히 옳은 이야기이다.
필자는 임상치매척도를 개발한 모리스박사가 운영하는 워싱턴대학 알츠하이머연구센터에서 이 척도에 대해 공부하여 소정의 자격을 획득하고 돌아와 우리 실정에 맞게 조정한 프로그램을 본원 기억노화클리닉에 적용하고 있다. 비록 본고장에서처럼은 어렵겠지만 1시간 정도의 면담과 신체진찰, 의학적 평가를 통해 인지장해의 회복 가능한 원인을 찾아내고 치매의 증상일 가능성을 검토하여 보다 조기에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클리닉의 가장 큰 목적이다.